[미생 리포트⑤]짠함에 대한 위로와 공감..강소라부터 김대명까지
입력시간 | 2014-11-11 08:05 | 강민정 기자 eldol@

사진=tvN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미생’에서 주연의 개념은 모호하다. 이성민이 맡은 오상식 과장과 임시완의 장그래 주변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확장되지만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회사를 채우는 모든 사람이 ‘미생’의 주연이다.

케이블채널 tvN 금토 미니시리즈 ‘미생’은 이런 강점 때문에 폭넓은 시청자를 열광시킨다. 인턴에서 2년 계약직 사원으로 전환된 사회초년생들의 삶에 20대가 이입된다. 모범이 되는 선배이자 성실한 부하직원인 대리의 삶에 30대가 투영돼 있다. 다수의 시선엔 ‘만년 과장’이지만 남들이 걷지 않는 정도(正道)를 닦는 ‘워너비 멘토’의 발걸음에 40~50대의 무게가 실렸다. 우리 주변 속속들이 ‘미생’의 인물이 있다.

안영이.(사진=tvN 제공)

△안영이와 한석율

경쟁 프레젠테이션(PT)과 인사 평가를 거쳐 4명의 합격자가 2년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의 기회를 얻었다. 장그래(임시완 분)와 그의 경쟁 상대였던 한석율(변요한 분), 신입사원의 정석인 장백기(강하늘 분)와 인턴 신분으로 10억원 가치의 영업에 성공한 안영이(강소라 분)다.

방송 중반에 이른 지금 ‘미생’에선 안영이와 한석율이란 인물에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인턴 시절 자신의 엉덩이와 가슴에 ‘뽕’을 넣고 신개념 속옷을 팔았던 안영이는 온갖 고초를 겪고 있다. “여자랑 이래서 일을 안 해”, “결혼에 임신에 출산에 육아까지 여자들은 참 이기적이야”라고 쏘아대는 선배와 상사에게 치이고 있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할 일을 찾아내는 당찬 모습에 많은 여성 시청자는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딸이 그린 그림에선 비록 달걀귀신으로 남았지만 회사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는 워킹맘 신차장(신은정 분)이 그의 미래가 될 것이라며 “지금을 견디라” 응원한다.

단순한 캐릭터의 지지를 넘어 나를 향한 격려이기도 하다.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도 죄인, 어른들한테도 죄인, 아이들에겐 말할 것도 없고. 일 계속 할 거면 결혼하지 마요 영이씨. 그게 속 편해”라는 신차장의 대사는 여사원들이 여상사에게 숱하게 들어온 조언과 다르지 않다.

사진=tvN 제공

‘저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라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안기는 한석율은 미워할 수 없는 구성원이다. 다른 팀의 속사정을 꿰뚫고, 사내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 흔히 ‘오지랖 넓다’라고 표현되는 캐릭터다.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사고 체계를 갖고 있지만 원단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기 위해 여자들의 엉덩이를 탐하는 ‘변태’임을 자처하는 프로 정신은 혀를 내두른다. 곁에 두면 사고가 끊일 것 같지 않은 인물이지만 내막을 알고 싶은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사람 또한 그다. 실제로 직장에서는 한석율 같은 후배가 제일 귀찮고 그와 같은 선배가 제일 피곤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식과 박대리

회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미생’엔 전혀 새로운 인물에게 중심을 내주기도 한다. 이성민, 임시완, 강소라, 강하늘, 변요한은 물론 ‘대리 급 인사’에 무게를 싣는 에피소드도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방송 초반부터 위로는 이성민, 아래로는 임시완과 호흡을 맞춘 김대명이 대표적인 예다.

김대명은 ‘미생’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두툼하게 접힌 뱃살, 통통하게 찐 볼살, 대충 만진 곱슬머리, ‘교복’ 같은 양복 차림새까지. 극중 김동식은 이 시대 모든 대리의 표상이다. 오상식 과장의 오른팔로 눈빛과 목소리만 엿봐도 그의 심리 상태 분석이 끝나버리는 눈치는 기본이다. 일 처리에 실수가 거의 없는 노력파고 누구보다 자신의 상사를 믿고 따르는 의리파다. 인턴 입사의 특전을 얻은 장그래에게 “스물 여섯이나 됐는데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요즘 청년 같지 않는 사람이네”라고 면박을 줄 땐 누구보다 냉혈한이었다. 알고보면 함께 한 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어쨌든 자신의 사람으로 감싸 안으려는 따뜻한 인성의 소유자다.

사진=tvN 제공

6회 방송에서 등장한 박대리는 안방극장을 눈물로 적셨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는 눈 앞에 이익을 좇는 요즘 세상에선 ‘만만한 바보’다. 이제 막 입사한 계약직 사원 장그래에게 용기를 얻고 도움을 받을 정도다. 그만큼 박대리는 노력과 정성을 쏟아부은 과정이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 세상에 찌들지 않은 인물이다. 박대리에게 ‘뭔가 하고 싶다면 너만 생각해’라는 성공한 친구의 조언은 와닿지 않는 먼 이야기이다. ‘행복하긴 한데, 들어가기가 싫다. 집이 힘들다’던 혼잣말은 남자 시청자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자기 고백에 가까운 회의 시간을 견뎌내는 박대리를 상반신 탈의된 모습으로 연출한 것은 소위 ‘벌거 벗겨진 기분이다’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DP는 “박대리처럼 입사 4년차에 놓인 직장인들은 이 시대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이다. 결혼을 했거나, 할 예정이라 목돈이 필요한 시점이고 회사 내 입지를 분명히 세워둬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 가족 어떤 것으로부터 위로받질 못하고 산다. 향후 ‘미생’에선 박대리처럼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적인 이야기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신경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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